[경향신문] 신세계 ‘주35시간 근로제’ 시행 이후···마트 노동자는 더 바빠졌다 / 2018.1.24

관리자
201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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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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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한 이마트 매장 직원 전수정씨(가명)는 고객들을 대신해 장을 보는 일을 한다. 고객이 온라인몰을 통해 주문을 하면 전씨와 동료들이 마트를 돌며 물건을 챙긴다. 두 층으로 된 매장을 돌아다니며 야채, 생선, 고기, 라면, 과자, 생활용품 등을 담아(피킹) 사무실에 와서 포장(패킹)한다. 냉동식품, 냉장식품은 구분하고 깨지는 물건은 별도로 포장해 고객이 요청한 시간에 맞게 배송되도록 준비한다. 전씨가 일하는 팀에선 매일 4~5명의 직원이 170명 분의 장을 본다.

                

전씨는 요즘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한다. 무급 점심시간을 빼면 하루 7시간을 일한다. 올해부터 신세계그룹이 ‘주 35시간 근로제’를 시행하면서 하루 노동시간이 전보다 1시간 줄었다. 앞서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신세계의 선택에 찬사가 쏟아졌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을 국정 주요 과제로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와도 발맞춘 정책이었다. 이마트 직원으로서 한 시간 일찍 퇴근하는 삶을 3주 넘게 살아 본 전씨에게 무엇이 달라졌는지 물었다. 

                

“몸이 더 힘들어요. 일할 사람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장봐야 하는 케파(고객 1명이 주문한 양을 1케파로 부름)가 줄어든 것도 아닌데 일은 한 시간 일찍 끝내야 하니 잠깐 쉴 틈이 없어요. 일이 밀린 날에는 매장에서 김밥을 사 와서 사무실에서 때워요. 하루종일 서 있고 돌아다니고 바쁠 땐 뛰어다녀야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제가 골반에 석회까지 생겼거든요. 우리같은 주부들은 집에 가서도 일이 많잖아요.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일단 한 시간 누워있다 시작해야 돼요. (회사는) 근무시간이 줄었으니 여가도 좀 즐기고 가족들과 시간 보내라는데, 월급은 제자리에 몸이 아프고 병원비가 더 나오는데 가족들과 뭘 어떻게 잘 지내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마트산업노조는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과 함께 24일 국회에서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자 착취하는 신세계-이마트의 이중성 폭로 증언대회’를 열고 신세계가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한 이후 마트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공개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업무량도 줄이지 않고 인원도 늘리지 않은 채로 근무시간만 1시간 단축하면서 법적으로 보장 받아야 하는 휴게시간마저 줄고, 각종 업무 준비시간이 깎여 노동강도가 세졌다고 호소했다. 사측은 ‘업무 효율화’를 내세우지만, 물리적 제약이 큰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더 바삐 움직이거나 개인 시간을 내 가며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마트산업노조가‘신세계 이마트의 이중성 폭로 증언대회’(간담회)를 열고 신세계 이마트에서 올해 일방적 근로시간단축을 한 후 일어난 업무부담과 이에 반대하는 노조원에 대한 탄압 사례 등을 공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마트산업노조가‘신세계 이마트의 이중성 폭로 증언대회’(간담회)를 열고 신세계 이마트에서 올해 일방적 근로시간단축을 한 후 일어난 업무부담과 이에 반대하는 노조원에 대한 탄압 사례 등을 공개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전수찬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마트 매장 계산원(캐셔)들의 이달 ‘근무 스케줄 운영 가이드’를 공개했다. 내용을 보면 작업 준비·마감시간과 휴게시간을 쪼개 계산대 업무로 돌린 정황이 보인다. ‘대기시간’으로 불리는 유급 휴게시간은 30분씩 두 번 있던 것이 20분씩으로 줄었고, 계산대에 들어가기 전과 후에 배정된 준비·마감시간도 각각 15분에서 10분으로 줄었다. 근로시간이 1시간 줄었지만 결과적으로 계산대에 서서 일을 하는 시간은 6시간반에서 6시간으로 30분밖에 줄지 않았다. 

                

“대형마트는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정산소에서 계산대까지 이동하는 시간만 5~10분이 걸립니다. 계산대에 투입되기 전에 돈통을 받고 옷을 갈아입는 등 작업을 해야하는데, 이런 준비와 마감을 10분 안에 하라고 하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그래서 현장에서는 계산대에 제 시간에 들어가기 위해 조기출근을 합니다. 일부 매장 관리자들은 법으로 보장되는 1시간 점심시간도 마치 회사가 주는 것처럼 ‘30분동안 밥 먹고 30분은 일하라’고 합니다.”(전 위원장)

                

“대기시간 20분동안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면 환전할 시간조차 부족합니다. 준비시간 10분은 준비금을 맞추고, 복잡한 투입시간표를 작성 해야 합니다. 조금 일찍 나와 이 10분을 맞춥니다. 마감시간 10분동안 상품권에 다 도장을 찍고, 줄을 서서 마감을 합니다. 10분은 어림없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퇴근시간에는 10분 15분은 항상 더 일을 하고 나갑니다. 예전보다 30분 회사에서 무료봉사를 더 하고 있습니다. (노동시간) 한 시간을 줄여 지금쯤 즐거운 여가생활을 해야하는데 왜 이리 몸은 예전보다 힘들어지고 연장(근로) 1시간을 더 많이 한 것 같습니까.”(박기정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인천연수지회장, 계산원) 

                

“저희가 하루에 출근해서 1만5000보 정도를 걷고 있었습니다. 지금 1시간이 줄었는데도 마찬가지로 1만5000보 이상 걷고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온다고 하니까 저를 붙들고 즉석조리식품 코너에서 일하시는 분이 이렇게 말하셨어요. 본인이 하루에 김밥 100개를 말아야되는데, 8시간 근무할 때도 100개를 말았지만 7시간 근무를 할 때도 100개를 말아야 한대요. 그러면 100개를 말려면 화장실을 갈 시간이 없다, 그래서 물을 안 먹고 있대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아끼겠다는 거죠. 저는 이 1시간이라는 게 이렇게 긴 줄은 몰랐거든요.”(차순자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수원지회장, 농산팀)

                                

                    

                        마트노조 제공.                        

마트노조 제공. 

                    

                                                

“근무시간 단축이 시행되기 직전부터 직원들이 이용하던 커피포트마저 없애버렸어요. 아침에 물건을 진열하려면 정말 힘이 들거든요. 진이 다 빠져서 잠깐 쉴 때 우리끼리 ‘마약(커피) 한 잔 먹고 하자’ 그러거든요. 그런데 지난달 말쯤 관리자가 ‘커피포트가 점검에서 불합격이 나와 치웠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끼리는 다 핑계란 걸 알았어요. 커피도 마시지 말고 일 하란 거구나….”(서울 한 이마트 매장 직원 ㄱ씨) 

                

이런 상황에서 노조를 설립해 대응에 나서려 하면 사측이 노조를 탈퇴할 것을 종용하고 부당 발령을 낸다는 게 이날 발언에 나선 노동자들 주장이다. 노조 간부들을 따돌리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긴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주 마트에서 연봉계약이 실시됐습니다. (노조) 간부가 있는 부서에선 너무나 조용해 아무도 몰랐어요. 많은 직원들이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가서 컴퓨터에서 ‘확정’을 누르면 사인이 절로 됐다고 하더라고요. 알고보니 밥시간 외에 30분~1시간 인정하던 유급 휴게시간(대기시간)을 아예 (계약서에서) 빼버린 거예요. ‘밥만 먹고 일을 하라’는 계약서에 강제 사인하게 했던 거예요. 조합원들한테 문자가 와서 ‘사인 하지 마십시오’ 했어요. 많은 사람이 이미 (서명을) 했었고 숨은 조합원들도 지켜만 보고 있었죠. 조합원들이 다음날 얘기를 하더라고요. ‘언니, 너무 미안해.’ 수십 번 전화, 카톡을 받고 관리자가 ‘너 발령낸다, 왜 사인 안 해’ ‘이거 별 거 아니야’ 하는 협박성 말을 듣고 사무실에 가서 결국 서명을 했대요. (중략) 제가 물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면, 거기서 만나는 (동료) 언니들이 되게 많아요. 다들 쉬는 날을 기다리는 거예요. 병원에 안 오면 힘들어서 일을 못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을 강제로 연봉계약서에 사인하게 하면서, 저희는 노예처럼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부쩍 들고요.”(이효숙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가양지회장, 검품팀)

                

그동안 마트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을 약간 넘기는 수준으로 책정돼 왔다. 올해 이마트 전문직(계산원, 상품진열직, 판매직 등) 직원들은 매달 고정임금(최저임금 산입범위에서 빠지는 상여금 등은 제외)으로 158만2000원을 받는다. 신세계는 주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면서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이라고 홍보했지만, 마트노조는 이같은 노동시간 줄이기가 결국 1만6000명에 달하는 마트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줄이려는 ‘꼼수’라고 본다. 

                

이전처럼 주당 40시간(한달 209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문재인 정부 공약대로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는 2020년에 월 최저임금은 209만원이 돼야 하는데, 노동시간을 35시간으로 줄이면 월 최저임금은 183만원에 그치게 된다는 계산이다. 이마트가 35시간 근로제를 도입할 때부터 이런 주장을 내놓은 박하순 민주노총 정책연구위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이마트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노동시간 줄이기’는 반드시 노동강도 강화,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와 한 세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마트노조는 이마트 일부 지점에서 발생한 노조원들에 대한 탄압 등 부당노동행위를 조만간 노동청에 고발하기로 했다. 

                                

노조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마트 본사 관계자는 “계산대 근무시간을 1시간 줄이면서 계산대 근로시간을 30분 줄이고, 대기·준비·마감시간을 각각 10분씩 줄인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하는 것 아니냐”면서 “계산원들이 대기실로 이동하는 데 오래 걸릴까봐 가까운 곳에 휴게시설을 마련하고 자동 발주, 전동잭 도입 등으로 업무 개선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노조원에 대한 부당 전보와 탄압 의혹에 대해서는 “누가 노조원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고, 점포 내에서 업무를 바꾸는 발령은 지난해 2500건 정도 있어서 노조원에 대한 탄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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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41639001&code=940702#csidx2b4784206e6e086ba4fb2eba4443eb5